안녕하세요. 서연입니다. 저는 새로 산 헤드폰으로 구의 증명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며 최진영 작가님의 신작 <단 한 사람>이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. 예술과 함께하는 오후는 더할 나위 없이 낭만적입니다. 책을 읽다가 익숙한 향기에 문득 어렸을 적 가장 좋아했던 책이 생각나 아련해졌습니다. 저의 기억을 함께 나누면 좋을 거 같아 편지 씁니다.
언젠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 아주 어렸을 적 일입니다. 아주 조그마한 저의 방 안 베란다에는 책이 항상 꽂혀 있었어요. 어렸을 때에는 책과 친하지 않았는데 가끔 방에 있다가 심심하면 베란다에 나가 더위와 추위를 참고 책을 읽으면서 몇 시간씩 앉아있곤 했습니다. 그 중에서도 베란다에 나갈 때마다 읽었던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몇 번이고 닳고 닳도록 읽었으면서 향기가 좋아 계속 꺼내본 책이 있었어요. 꾸준히 심심할 때마다 책을 읽었으면 참 좋았겠지만 점점 책을 읽는 시간이 줄어들고 책장에는 책들이 방치되어 있었답니다. 하하.
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러 이사를 갈 때즈음 책장을 정리한 날이 있었는데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그 책이 없는 거예요. 늘 네 번째 칸에 꽂아둔 책인데 항상 그 책과 꽂혀있던 다른 책들은 그 자리에 꽂혀있고 제가 가장 좋아하던 책만 없어져 있었습니다. 혹시 몰라 어머니께 여쭤보니 그런 책은 없었다고만 말씀하시는 거예요. 근데 생각해 보니 진짜 그런 책이 있었나? 싶기도 하고, 향기만 기억나고 책 내용은 기억이 안 나기 시작했습니다. 지금도 한 장 한 장 넘겨서 읽었던 것도 기억이 나고 그 책의 그림체까지 기억이 나는데 내용만 기억이 안 나요. 제가 닳고 닳도록 읽었던 그 책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?
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때엔 문득 생각이 날 때도 있어서 어머니랑 함께 그때 이야기를 하곤 했었는데, <단 한 사람> 책을 펴자마자 그 향기가 나는 거예요!!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잊고 살았었는데 아주 반가웠답니다.
저는 향에 민감한 사람이라 사람도, 상황도 향으로 기억하는 버릇이 있습니다.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기억이 있어요. 초등학교 6학년 때 저의 혼란한 사춘기 시절을 버티게 해 준 밴드 '넬' 콘서트에 다녀오게 되었습니다. 좋아하는 사람의 콘서트를 처음 가는 거라 떨리기도 하고 설레기도 했었는데요. 콘서트장을 가득 메우는 장미 향기를 저는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예요. 콘서트 보는 내내 장미향이 온 몸을 훑고 지나가는데 황홀하기까지 했습니다. 콘서트를 다 보고 나와서도 한동안 옷자락에서 향기가 묻어 나왔어요. 그날의 기억은 평생 잊지도 못할 거고, 아주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거 같습니다.
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는 정말 많잖아요. 저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것은 향기인 거 같습니다. 어렸을 적 좋아했었던 책을 오래도록 기억 못 하다가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떠올리게 된 것처럼 언젠가 저의 이 모든 순간들이 잊히고 또 문득 떠오르기도 하겠지요. 그리워하는 게 많아질수록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 된다고 생각합니다. 어린 시절이 사랑스럽지만 아리기도 한 것은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.
아무튼 책을 읽다가 문득 어린 시절 생각이 나 편지 썼습니다. 여러분도 향기와 관련된 기억이 있으시다면 저와 함께 나눠주시겠어요?
2023년 11월 22일
S2O 씀 |